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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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4-28 15:07 조회806회 댓글0건본문
5·18민중항쟁 42주기에 부쳐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
올해로 5·18광주민중항쟁 42주기를 맞는다. 필자는 당시 법과대학 재학 중 작년에 작고하신 전옥주(본명 전춘심)씨의 가두 방송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5월 20일 밤을 지새우며 전옥주씨와 같이 시위군중을 이끌고 다니다 21일 새벽 신역 앞 광장 분수대 곁에 방치된 계엄군의 총탄에 죽임을 당한 시신 두 구를 수습하고 나서 더 많은 시민의 희생을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시민협상 대표의 한 사람으로 장형태 도시 등 계엄 당국과 협상을 하였다.
지금까지 필자는 5·18과 관련 일부 언론에 기고한 외에 5·18 민주유공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 이는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러움과 온갖 폄훼와 거짓 정보 등으로 5·18민중항쟁의 진실이 왜곡되고 일부 5·18 관련자들의 일탈 행위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민중항쟁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특히 동남아시아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곧 5·18민중항쟁의 기록물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이기도 하고, 이번 제20대 대선에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을 비롯한 다른 후보자들이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는 5·18민중항쟁이 일부 비판적인 여론이 있음에도 무엇보다 숭고한 역사적 가치는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랑스러운 유산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해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이래 수많은 참배객을 맞이하면서 느낀 점은 유명을 달리하신 한분 한분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참배객들과 많은 국민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와 고마움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8·15광복 이후 자유당의 독재와 군사 쿠데타에 의한 군사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하였지만, 5·18민중항쟁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이 국민의 기본권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남 지역 등 다른 지역에서 오신 참배객들에게 5·18민중항쟁 당시의 실상을 설명하고 일부 안장자에 대하여 안내를 하면 그동안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고서 수구 세력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마음을 전해주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통해서 단지 기억의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전히 5·18민중항쟁의 실체적 진실의 규명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5·18민중항쟁 당시 사실상의 가해자였던 당사자들이 저세상으로 가버린 지금 좀 더 구체적인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수많은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사실을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살아있는 우리가 답해야 한다.
혹자는 이러한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속된 표현으로 그만 좀 5·18을 우려먹으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5·18민중항쟁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은 당시의 현장을 알지 못하거나 극히 일부 5·18 민주유공자의 일탈 행동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5·18 민주유공자들은 공법단체 출범 과정에서 부정적인 모습에서 환골탈태하여 시민들과 함께 하는 5·18민중항쟁으로 거듭나야 한다.
따라서 5·18민중항쟁의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더 이상 훼손되거나 폄훼되지 않도록 미래세대가 기억하고 삶의 나침판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요약력>
법학 33회/전 본회 사무총장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
(사)더 좋은 정책연구원 이사장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5·18민중항쟁 시민협상 대표(전)